

圓和道의 기본형은 8방향으로 5개씩 있고, 합쳐서 40가지 형태가 있다. 다른 일반적인 무술의 형태에 비해 수적으로는 많지 않다.
자신이 앞을 보고 서있을 때 오른쪽 절반 방향으로 가는 공방을 '내공방'이라고 하고, 왼쪽 절반 방향으로 가는 공방을 '외공방'이라고 한다. 전방으로의 공방은 '정면 공방'이고, 뒤로의 공방은 '후면 공방'이다. 각각 8방향으로 부르는 방법이 붙어 있다. (위 그림 참조)
이 기본의 형태는 즉시 실천에 응용이 가능하지만,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는 무도장에서의 긴장감이 감돌고, 스피드감이 있는 형태를 정확히 무비에 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케이와도의 기본 기술은 느긋한 느낌과 부드러운 원의 움직임이 요구되고있다.
이 차이점은 일본 금의 음색과 한국의 가야금의 차이와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기'의 세계에서는 힘이 충만하고 탄다에도 힘이 다져져야 하는 것이다. 이 기름을 느끼는 것. 기를 둘러싸는 것이야말로 圓和道의 비밀로 여겨지고 있다.

伽耶琴 (가야 금, 빛날 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악기로 3세기부터 6세기 중반에 걸쳐 한반도 중남부에서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던 가야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시작된다.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악기로서 사랑받고 있지만, 일본의 코토보다 현이 느슨해지고, 소리도 느슨한 소리로 갑작스러운 소리가 아니다. 일본에는 나라 시대에 전해졌다.
「전통적인 악기」가 가지는, 음악성이나 문화성, 정신성을 이해하려면 오감을 통한 만남에 의해, 처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런 기본 자세인지, 어떤 기법인지, 하나하나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가치를 이해하려면 비교라는 지적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느낀다는 감성도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실천을 통해야말로 몸을 꾀할 수 있습니다.
무술도 오감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 뒤에 있는 『문화와 역사』의 차이를 실감하는 것이 보다 중요합니다. 또, 오늘의 다양한 유파가 있어, 거기로부터 더욱 분파하는 것. 게다가 나라라는 틀을 넘어 볼 때는 더 큰 충격, 문화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圓和道를 배울 때는 어깨의 힘을 빼고 긴장감에서 풀어주세요. 원화도의 비밀은 『탈력』에 있는 것입니다. 탈력에 의해 본래적인 마음의 세계를 되찾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힘을 발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천의가 자신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심사회 1. 일본 원화도 협회에서의 승급·승단 후보자의 심사는 일본 원화도 협회의 규약에 따라 실시된다.
다만, 승급 후보자의 심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각 지부도장장에게 일임한다. 또 일본 화화원장의 제안에 의한 특별사유가 있는 승급·승단 후보자에 대해서는 이 내규에 의하지 않고 심의할 수 있다.
2. 이 규약에 제시된 최소 연령, 수행 연한, 시합(연무 등을 포함) 성적 등은, 최저의 기준을 나타낸 것이며, 이 기준에 이르지 않는 사람은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3. 급위·단위는 순차 승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그 사유에 대해 정사한 후 뛰어 승급·승단하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4. 승급승단의 최소 연령은 다음 기준에 따른다.
단, 발군 승단 및 특별 승단에 대해서는, 이 기준에 관계없이 승단시킬 수 있다.
■ 승급하는 급위와 승급할 수 있는 최소 연령
8급-만 5세 7급-만 6세 6급-만 7세 5급-만 8세 4급-만 9세 3급-만 10세 2급-만 11세 1급-만 12세
■승단하는 단위와 승단할 수 있는 최소 연령
초단-만 13세 2단-만 16세 3단-만 19세 -136bad5cf58d_5단-만 -재 육단-만 -재 _cc781905-5cde-3194-bb3b-136bad5cf58d55 _팔단-만-재
(4단 이상은 사범이므로(사)세계 원화도 연맹의 심의를 필요로 한다)

승단하는 단위와 심사의 형태
나루와 (정 1급~초단) 적대(일반 무술의 흑대)
히라우치 공방 제일~3번
정화 (2단~3단) 차대(엔지색)
히라우치 공방 4번~5번
4단 이상은 아래와 같다
■(사)세계 원화도 연맹으로부터의 자격장 수여
■세계 지도자 수련회 참가자
인화 (4단~5단) 차대 안에 녹색 선
측외공방 1번~5번 측내공방 1번~5번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도.
기의 소생 수련을 지도할 수 있어 사람을 치유한다.
충화 (6단~7단) 차대 안에 푸른 선
주외 공방 제일~5번·주내 공방 제일~5번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도와 국가기준에서의 공헌도.
기의 장생 수련을 지도할 수 있어 환경을 치유한다.
심화( 팔단 ~) 차대 안에 흰색 선
세계 기준으로 공헌.
기의 완성 수련을 지도할 수 있다.
圓和(십단) 차 띠 안에 노란 선
천주기준에서의 활약과 공헌·기의 완성 수련을 지도할 수 있어 환경을 치유할 수 있다.
대원화
타카코・충신・성인・성자・신인애 일체를 이룬다.
참고 圓和道錬武館 색대 구분표 형 참고 2021년 11월 5일 현재
무급~백대 몸 풀어·회전 공방·보법·수신
8급~황대 정면 공방 1번·2번·3번
7급~황대에 노란색 1본선 정면 공방 4번·5번
1)형화 6급~녹대 평외 공방 제일
5급~녹대에 노란색 1본선 평외 공방 2번
4급~녹대에 노란색의 2본선 평외 공방 3번
2) 역화 3 급~청대 평외 공방 4번
준 2급~청대 평외 공방 5번
2급~청대에 노란색 1본선 후면 공방 제일
준1급~청대에 노란색의 2본선 후면 공방 2번
3)성화 1급~적대에 노란색 1본선 후면 공방 3번(일반 무술의 흑대)
준초단~적대에 노란색의 2본선 후면 공방 4번·5번
심사 내용
1. 형 형화:정면 공방·평외 공방
역화:평외공방・후면공방
成和:후면공방・히라우치공방
2. 응용 동작 형화:정면 공방의 응용
1) 직접 치기 2) 치기 3) 던지기 4) 관절 기술
역화: 정면 공방·평외 공방의 응용
1) 직접 치기 2) 치기 3) 던지기 4) 관절 기술 5) 던지기로부터의 관절 기술 6) 단도 제거
성화:정면 공방·후면 공방의 응용
1) 직접 치기 2) 치기 3) 던지기 4) 관절 기술 5) 던지기에서의 관절 기술 6) 단도 취 7) 장검
8) 2인용・시험 분할
3. 필기시험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이 그 나라 고유의 신앙과 신화, 그리고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건국신화』나 『천손강림사상』을 가진 나라도 많다. 한민족에게는 천손으로 강림한 '단군'에 의해 나라가 세워져 단군을 나라의 조로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단군 할라보지(爺さん)라고 부르며 그 자손이라는 사상이 뿌리 내리고 있다.
한민족은 사람이 죽는 것을 '트라카쇼타(돌아갔다)'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조상은 하늘에서 강림하고 그 혈통을 계승한 우리는 지상의 삶을 마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이 생각이야말로 『원의 사상』 이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일본어로는 「가거나 오거나」라고 표현하지만, 한국어로는 「와타리 카타리(오거나 가거나)」라고 표현한다. 하늘에서 호를 그려 내려온 천손이 시간이 되면 다시 호를 그려 돌아간다.
이 신화 중에서는 천손의 탄생은 둥근 '알'에서 시작되었다. 대우주는 둥글고 마음의 모양도 둥글다. 극대에서 극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마루』. 즉, 그 중심은 하늘이라고 하는 「원의 사상」이 숨쉬고, 생활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사람이 하늘에 기도를 바칠 때의 동작이 '비손 피성(기수)'이다. 고대 배달족(한민족)의 기도는 하늘을 원으로 잡아 양장을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문지르며 몸을 앞뒤로 혹은 좌우로 흔들며 기도하는 동작이 되었다.
원화도에서는 가장 먼저 배운 기술이 이 '피손'이 조금씩 커진 형태의 '회전 공방'이다. 이 회전 공방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상단 회전 공방과 위에서 아래의 하단 회전 공방으로 구성된다.
원화도에서는 가장 먼저 배운 기술이 이 '피손'이 조금씩 커진 형태의 '회전 공방'이다. 이 회전 공방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상단 회전 공방과 위에서 아래의 하단 회전 공방으로 구성된다.
濊 (와이 족)
언어학적으로는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알타이제어족으로 되어 있다.
'고구려지명' 속 일본어와 유사한 단어는 한반도 중부 이북, 압록강 이북부에 이르지만, 이들은 미나토어 요소라고 생각된다.
미나토족의 활동은 기원전 1100년부터 확인되고 있다. 미나토는 해민·내륙수계민으로서 수산가공품의 물류판매의 상업활동에도 종사하는 월경하는 어림 사냥민적 성격을 가지는 한편 정주농민으로서 한인과 같은 촌락에 공거했다.
미나토족의 활동은 기원전 1100년부터 확인되고 있다. 미나토는 해민·내륙수계민으로서 수산가공품의 물류판매의 상업활동에도 종사하는 월경하는 어림 사냥민적 성격을 가지는 한편 정주농민으로서 한인과 같은 촌락에 공거했다.
濊人은 魏晋代(184년-589년)에는 이미 한자의 높은 독해 기술력을 갖고, 세계 최초의 변체 한문인 '나카하라 고구려 비문'은 濊人을 매개로 한자의 음훈을 한반도에 정착시킨 최초의 예라고 생각된다.
757년의 지명 개정에 의한 「고구려지명」중의 일본어와 유사한 음훈 표기는 미나토어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6~8세기의 미나토어와 고대 일본어가 어떠한 계통적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생각된다.
「미나토조조어~대륙 미나토어~8세기 미나토어는 10세기 무렵 소멸」
「미나토토미조어~열도 미나미야어~일본어・류큐어・하치조어」
濊語은 경상도, 전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3세기 이래 한어와 함께 말해졌다고 생각된다. 미나토어파는 6세기까지 계통이 끊어져 왜어파는 그것을 모르는 시기에 분기했다고 생각된다.
濊倭語族은 한반도에서 한어의 영향으로 문법적인 알타이화를 경험했다고 생각되는 반면, 경상도 방언, 강원도 삼척·강릉·녕월방언의 '성조' 등은 일본해 측에 우세 이었던 미나토어의 영향에 의한 「지역 특징」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동북부에 있던 '늪'과 '貊(하쿠)'는 濊貊·沃沮(잘 소)·고구려·부여의 4종족의 전신이다.
현재의 한국 강원도 강주에 있던 '동남'은 전한대의 중국 동북부에 있던 濊의 후예로 여겨진다. 사서에는 남편의 출자가 미나토로 보이는 기술이 있으며, 또한 貊를 고구려의 별명 또는 별종으로 적는다.
『후한서』에서는, 濊・沃沮・高句麗는 원래 조선(위씨 조선)의 땅에 있었다고 적는다.
미나토족은 송화강 상류의 약수하(현리대수, 현납림하)를 건너 남진했다. 남편을 건국하기 이전의 경화고성이 발견되었으며, '남성'도 발견되고 있다.
창해군 설치 및 폐지
元朔元年(紀元前128年) 가을, 奈奴(쿄도)가 요사이군에 침입해 그 태수를 살해하고, 어양군·참문군에도 침입하여 도위를 깨고 3천여명 도 살해했다.
이에 대해 한은 장군의 위청을 안문군에서, 장군의 이식을 대군에서 파견하여 천인분의 포로와 수급을 얻었다. 이 일건에 즈음해 동이의 미나미의 군주의 남각 등 28만명이 한에 내렸기 때문에 거기에 창해군을 설치했다.
한은 원수 3년(기원전 126년) 봄, 창해군을 폐지했다.
남편(부애 ) 나라
건국신화
『 논형』길험편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옛날, 북이에 이탈국이 있었다. 그런 영기가 내게 내려와서 몸을 굳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왕은 속았다.
그 후, 그녀는 남자를 낳았다. 왕이 명령하여 돼지 오두막에 방치했지만 돼지가 숨을 내뿜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다음으로 안정으로 옮기자 말도 숨을 내뿜었다. 그것을 왕은 하나님의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끌어들여 먹여주고, 동명이라고 명명했다.
동명은 길어지자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능숙하고 흉포했기 때문에 왕은 동명이 자신의 나라를 빼앗는 것을 두려워 다시 죽이려고 했다. 히가시 아키라는 나라를 피해 남쪽으로 달려 시 갯수에 와서 활로 강의 수면을 쏘면 물고기와 촛불이 떠올라 탈 수 있었다. 이르기까지 왕이 되었다”는 기술이 있다.
『위서』나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도 남편의 출신이며, 중을 이끌고 남편에서 동남쪽으로 도망쳐 고구려를 건국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해부호(해부루·헤브르)왕이 다스리고 있었던 뒤에 태양신의 해모소(해모수·헤모스·주몽의 아버지와도 전해진다)가 천천히 왔다 그래서 해부 타카는 동쪽으로 퇴거하고 다른 나라(동부여)를 세웠다고 한다.
남편, 고구려, 백제의 건국전설은 각국의 시조가 태어난 나라에서 박해를 받아 도망하며 대하를 넘어 새로운 땅에서 왕이 된다는 구성에서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같은 남편으로 시작하는 피를 나눈 형제국가라고 생각된다.
남여국은 태화 18년(494년)에 타카시(모키츠)에 멸망당했다. 타카요시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 고구려의 북쪽에서 만주 지역에 살았던 사냥 민족으로 현재의 송화강에서 장백산 일대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숙신·사루의 후예로 당대에 있어서의 靺鞨의 전신이다.
하나로도의 뿌리는 고구려의 선배제도
신수 단 대제는 하늘에 바쳐진 올림픽
스모나 가라데와 같이 일본에서 발상했다고 여겨지는 격투기의 역사를 끈 때에 고구려, 백제, 신라로부터의 영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한국이나 북한의 격투기인 도권도(태권도)는 원래 수박(수박, 수박)이라고 불리며, 중국에 전해져서는 '권법'이 되어 오키나와에 건너 '가라테'가 되었다고 하는 도수 격투기로 있다.
스모의 전파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는데도 '실름 실름(조선 스모)'과의 유사성에서 추고하면 역시 한반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격편 격구·킥」이라고 하는 폴로(말을 타고 실시하는 하키)도 낡은 궁정 스포츠이지만, 이것도 통일 신라 시대에 한반도로부터 전해졌다고 되어 있다 .
우리나라의 '국기'라는 민족스포츠의 뿌리가 고대 조선에 있다는 것은 놀라울 것이다. 그러나 2천년의 옛 고구려는 이미 그 스포츠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중요한 신체문화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골품(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고구려에, 유력한 무사 집단이 보였지만, 그 무사단은 신분 제도와는 관계없이, 일반인으로부터 등용되고 있었다.
고구려
동명성왕은 고구려의 초대왕(재위: 기원전 37년 - 기원전 19년)이다. 「동명성왕기」에 의하면 성은 높고, 諱은 주몽(추몽)으로 된다. 이전 한류드라마로 유명해진 그 '주몽'이다.
루리 명왕은 고구려의 제2대왕(재위:전 19년-후 18년)이며, 諱은 유리(유익·유리). 초대의 동명성왕(朱蒙)의 장자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이모동생에게 비류와 백제국의 시조가 되는 온초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2세기 무렵에 태조 태왕(주몽의 한손)이 더욱 강력한 나라를 쌓아 올렸지만, 그 요인인 듯, 기력이 가득하고 용기 넘치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선배(선배·선배) )”라고 하는 무사단 제도를 창설해 국가 체제의 강화와 번영을 촉진시켰다.
매년 3월과 10월의 신수단(신수단·신스단)이라는 대제에서는 대중을 모아, 제전 경기회를 개최. 고구려판 올림픽에서 권위 있는 대회였다. 신하에서 개최된 신성한 스포츠 대회이며, 제전에 모인 군중에게, 손수·스모·궁술·검·편각 점프·수전·검무·가무·대 사냥의 경기를 거행해, 각종 승부 결과, 그 승리자를 '선배'로 선출, 임용해 무사단을 구성한 것이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상당한 봉록을 받았고, 집을 나와 군대를 조직하여 한 집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그리고, 고사의 연구, 학예의 습득, 산수의 탐험, 또 성곽을 구축하거나, 도로를 정비하거나, 사람들을 위해서 강습을 하거나 해 일신을 사회와 국가에 바치고, 모든 곤고를 그만두지 않는다 단지이다.
그 중에서도 성행과 학문과 무예의 가장 우수한 자를 뽑아내 스승으로 접했다. 스승은 효백(효백·의례적 선물을 받는 검은 색)으로 만든 옷을 착용하고, 그 스승 중에서도 상석자를 최대급의 칭찬의 말인 태대형으로 존칭했다 .
태대형은 전쟁이 오면 모든 선배를 이끄는 스스로 일단을 조직해 전장에 맡겨 전장에서는 죽음을 가리지 않고 싸우고 가장 용감했다. 또 선배는 강력한 무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곳에서 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중요한 지위에는 거의 선배의 골품(신분제도)에 의해 독점했을 정도였다. 선배는 전투부대의 역할을 맡아 고구려의 국력 신장에 크게 공헌했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세워진 태학에서는 무예를 필수과목으로 채용했기 때문에 무사가 체계적인 무예의 일관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같은 시기에 편당이라는 사학원에서도 태학이 된 무예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에 무예 수준이 높아졌다. 이런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고구려는 용명을 일으키는 강력한 국가로 군림하고 선배 집단은 그 역할을 충분히 완수한 것이다.
'선배제도'에는 문무양도의 정신이 뚜렷하게 발견되어 고구려의 숭고한 깔끔한 체제운영을 상상할 수 있다. 나중에 우리 일본에도 탄생한 「무사도」를 어쩐지 방불케 하고 있는 것 같다.
고구려 말기
대히트한 한류시대극 '태조영·대조영·대조영'에 등장하는 淵蓋蘇文(연개소문·영계소문)(생년불상 - 666년)은 고구려 말기의 대막리지(재상)이며, 대장군이었다.
이 시대는 '선배'가 완전히 국운을 좌우할 만큼 강력한 무사단으로 성장해 '선배'의 상석은 국가의 대권을 장악하고, 명임답부가 차대왕을 폐지하고 신대왕 을 옹립하거나 淵蓋蘇文도 영류왕을 폐하고 보장왕을 왕위에 붙이는 혁명도 일으켰지만, 스스로가 왕이 되지는 않았다.
기원 645년, 아시아 전토의 지배를 쫓는 당의 제2대 황제·태종(이세민)은 대군(30만명)을 이끌고 한반도·고구려에의 침공을 계속했다. 안시성의 성주 양양 만춘 장군은 나라 그리고 고구려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5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20만명이 넘는 대군을 격퇴시켰다. 당시 '선배'의 무예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
이렇게 강력했던 선배 집단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고, 후대에 이르러서는 무인 집단으로서 용맹과감을 뜻하는 역할이 점차 약화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관심이 줄어들어 학문도 소홀히 하게 되어, 그 지적 수준도 현저하게 저하되어, 자랑스러운 선배의 명칭은 유교도에게 있어서 변해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군대의 단순한 무력만의 힘, 무예 존중에만 마음을 부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붕괴한 사례는 매거에 별로 없다. 고구려는 종교의 제사를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인재 발굴의 장소로 사용했다. 이것은 '선배'들에게 정신의 중요성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윽고 백제가 이 「선배제도」를 채용해, 신라가 같은 「화로도」를 발족했다. 이와 같이 비봉을 불문하고 실력주의, 체육적 기술과 학문소양의 능력에 의해 지위가 정해진 제도는 고대 조선인들에게 큰 활력과 예기를 낳았음에 틀림없다. (대초영·대조영은 나중에 발해국을 건국)
야만성이 없는 타국의 스모
신수단(신수단·신스단)의 대제에서의 제전 경기는, 지금까지 전해져, 형태를 바꾸어 사람들의 생활 속에 숨쉬고 있다. 스모나 도권도는 그 대표예이며, 인기의 비밀은 민족의 마음보다 더 어려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스모는 '실름'과 닮은 스모였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일본서기'의 기술에 있는 게이마속과 노미숙숙의 승부를 스모의 기원으로 하는 설은, 룰상에서도 조금 무리가 있다. 어떠한 나라의 스모라도 기원에는 야만성을 찾아낼 수 없지만, 일본의 스모만이 서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모는 신수단 대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쌀이나 우동, 청동기와 철기, 불전과 유교, 황실까지도 한반도에서의 도래로 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양성을 요구하는 이 세기는, 타국의 문화와의 상호 이해를 깊게 하면서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여러가지 시점으로부터의 과학적인 신발견을 세계 회의 등에서 검토,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신시대의 신문명을 여는 지성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큰 마음과 진실에 대한 진지한 실천력이야말로 그 나라들에 나타난 과거의 무술인의 『애천・애인・애국』의 정신을 상속 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 평화 실현의 선구자가 되는 용사의 모습이 진정한 무술인입니다.
(한봉기종사의 강화 1988년 7월 )
수직 원과 수평 원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구형 운동이 시작됩니다.
圓和道의 특징은 모든 기술이 원을 그리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수직 원과 수평 원을 기본 형태로 그 기울기가 변화하여 결국 구를 그리는 것입니다.
왜 원을 그리듯 움직이는가 하면, 지속성, 영원성을 갖게 하고, 또, 모든 방향으로 전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형 움직임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모양(형), 방향(각도), 거리(크기), 속도입니다.
인간의 행동 양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것은 가는 움직임과 오는 움직임, 혹은 보내는 움직임과 맞이하는 움직임, 누르는 움직임과 당기는 움직임입니다. 이것에 영원성을 갖게 하기 위해 원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원화도의 기술이 그 원형운동을 변화시켜 나가면, 때로 유도와 같은 형태가 되거나, 권권도(태권도)와 같은 표현, 합기도와 같은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새로운 무술을 시작하겠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술의 실력도 일반 학생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십수년 전에 영계를 통해 이상한 동작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나에게는, 무언가의 댄스인 것 같고, 이것은 저급 영에 의한 잡령 현상이라고 느끼고,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소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경고를 받은 것이 아닐까?” 라고 느끼고, 금식하거나 철야의 기도를 쌓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현상이 멈추지 않고, 마침내 3년이나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그 영과 적극적으로 싸워 몰아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자 막상 싸움 처음 깨달은 것은 지금까지 잡령 현상이라던가 댄스처럼 생각했던 동작이 사실 무술의 형태였던 것입니다.
연습 방법은 영계를 통한 마음 훈련
거기에서 일전해, 형의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냥 정리하거나 연습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연습 방법이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우선 영계를 통해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면 그 영에 대해 영적인 또 하나의 제가 형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곁에서 내 자신이 바라보면서 다른 부분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우선 머리 속에 형의 정확한 이미지를 이식해 갔습니다. 그 때문에 실제로 몸을 사용한 수련에서는 매우 부드럽게 습득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난점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형의 하나하나는 비교적, 편하게 몸에 가는 것입니다만, 그것들이 어떤 의미나 연속성을 가지는 가지인가를 알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다만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하나가 얼마나 응용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면 반대로 경탄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원화도 기술의 원형에서 이념에 이르기까지 3 단계에 걸쳐 지도
한편, 환상에 나타나서는 구체적으로 지도해 주신 어떤 분의 존재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지도는 3단계에 걸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圓和道의 원형이 되는 기술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이런 동작을 해보라." 라고 명령받고 나의 움직임에 대해, 「합격」 「불합격」의 평가를 해 주시고, 판을 가져와서는 「차려 보라」라고 명령받아 「좋다」라고 말할 때까지 , 모든 자세, 방향, 각도에서 나에게 걷어차게 계속합니다.
다음에는 유도나 도권도(태권도) 등 모든 무도의 도장으로 데려가 수련 풍경을 차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서는,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연습의 방법이나 기술이 많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도서관과 같은 곳으로 데려가 무술에 관한 수많은 저작을 읽었습니다. 원화도를 이념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해 나가기 위한 연구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단지 내가 개인적으로 수련하기 위해서만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1976년경부터 이 무술을 원화도로. 지금까지 일을 그만두고 무술가로서 전념하게 되었습니다.